2019년 12월 31일 퇴사를 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9년 반만의, 연달아 이어진 이직 후 네 번째 회사에서 6년 만의 퇴사였다.
서운하거나 섭섭한 마음 없이 온전히 시원한 퇴사였다.
퇴사를 기다리며 생각했던 계획은
첫째, 치앙마이 여행하기
둘째, 한 달간은 아무런 취업준비도, 무엇도 하지 않고 쉬기
셋째, 집-내가 생활하고 머무는 공간을 애정 할 수 있도록 가꾸고 돌보기였다.
일단 첫 번째 계획대로 당장 치앙마이로 떠났다.
늘 친절하고 항상 웃어주는 치앙마이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반하며 맛있는 것과 예쁜 것들에 둘러 싸여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계획대로 한 달간은 아무것도 안 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기보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한 달이 지나갔달까.
여행 준비-여행-설 연휴-그리고 감기몸살을 앓으며 1월 한 달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2월이 시작되고 일상에 기지개를 켜보려던 때 우한폐렴은 코로나19로 명칭을 변경하며 전 세계에 번져갔다.
한국에도 확진자가 늘어가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기엔 영 내키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이런 김에 집을 돌보는데 에너지를 쓰자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세 번째 계획을 실행했다.
집을 가꾸고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집에 지독하게도 얽혀있는 나의 운세를 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별자리에 새겨진 집에 대한 혼란. 집을 좋아하면서도 자꾸만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느끼는 심리, 어질러진 집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으면서도 집을 돌보는데 소홀하고 마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려면 집을 돌보고 가꾸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또 그래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깨끗하고 정리 잘 된, 취향 껏 꾸며진 집을 든든한 백 삼아 다시 세상에 용기 있게 나가고 싶었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쓸고 닦고 러그와 테이블, 빈백 등등을 새로 샀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커튼을 바꾸고 빈 벽에 그림을 걸고 또 버리고 쓸고 닦고.
약 3주가 걸렸다. 느릿느릿, 곳곳에 신중한 고민과 단정한 손길이 담겼다.
다시 한번 내게 집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의미여야 했는지 깨달았다.
정성 들인 집에선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종일 마음이 편안했다.
출근하지 않는 일상이 사무치게 감사했다.
코로나 때문에 집 밖으로는 못 나갔지만 괜찮았다.
집에만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생활도 몇 주가 되고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집이 주는 마음의 안정도 점점 효력을 잃고 있다.
점점 매일 씻기 귀찮아지고, 외식 없이 집밥을 만들어 먹는 것에 지치고, 집 밖이 궁금해지고 있다.
1월 초 신년회를 함께하고 여태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도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하는 조카의 쑥쑥 크는 모습도 보고 싶다.
함께 운동하던 에어로빅 클래스의 회원님들도 보고 싶고
홀로 떠난 국내여행에서 힐링하는 나 자신도 보고 싶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새삼 별일 없이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이제 내 집을 백 삼아 나아갈 용기를 가졌는데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쯤 세상을 내게 돌려주려나.
잠자코 있기엔 점점 조급증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간이 깨닫게 해주는 집과 집에 머무는 시간, 손수 지어먹는 식사에 대한 의미 역시 소중하기에
오늘도 집에서 잘 버텨본다. 아니 잘 머물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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