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지옥 탐방기
#집순이의 취향 심폐소생
#메종 키티버니포니
“회사만 그만둬 봐라. 동네방네 귀여운 곳곳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달리 코로나 19로 발이 묶인 지 5개월. ‘파워 내향인 + 강경 집순이파’인 나조차도 슬슬 마음이 갑갑해 질 때가 많은 요즘이다.
그러다 같은 무업 동지인 율언니에게서 온 메시지.
“우리 무업자끼리 평일 수다 타임 어때요?”
“조오오옿치요!”
“가고 싶은 곳이나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있나요?”
“전 다른 것 다 괜찮고요, 키버포 패브릭 샵 가보고 싶어요!”
5개월간 코로나 19로 마비된 생활에 매몰되어 취향도 뭣도 잃은 기분이었던 터라 예쁜 게 가득한 곳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가게 된 키버포 패브릭스 | 케이비피 패브릭스 | kbp fabrics
합정역 딜라이트 스퀘어(교보문고 건물) 뒤편 골목길을 조금 걸으면 금방 찾을 수 있는 메종 키티버니포니 서울. 키버포 쇼룸과 독립된 듯 연결된 사랑방 같은 작은 공간이 키버포 패브릭스다. 쇼룸으로 들어가는 대신 외부의 묵직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색색의 패브릭에 두 눈이 맑아진다.
키티버니포니에서 디자인하고 제작한 다양한 원단과 끈, 리본, 단추 같은 부자재 또 수입품인 것이 분명한 재봉도구들과 도서, 키버포 패브릭으로 만든 핀 쿠션들까지. 고백하자면 이때 약간 아무것도 안 보였다. 나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었달까. 여기서 가장 귀여운 것들을 ‘겟’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빠르고 정확한 스캔을 하는데 온 두뇌를 쓰느라 주변의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최종적으로 고른 건 자주색 바탕에 남색과 흰색 무늬가 채워진 원단 한 마와 40x40 사이즈로 재단된 자투리 천 3종 세트 1개 그리고 초록색 원단이 감싸진 네모난 단추 1개. 원단은 샘플 북을 보고 고르면 직원분께서 치수를 재고 잘라 주신다. 가격은 16,000원부터 시작해 원단의 종류와 후가공 여부에 따라 달라지고 기본 폭은 150cm로 큰 편에 속한다.
단추는 코트에 바꿔달고 자투리 천은 키친 크로스로 활용하고 자주색 원단은 치마를 만들어 입으려고 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20년 된 내 가정용 미싱이 고장이 났다. 당장 미싱을 새로 구입할 여유는 없어서 원단들은 방치되고 있다.😢
그래도 단추는 집에 오자마자 바꿔 달았다. 배선생은 단추도 안 채우고 입으면서 왜 바꿔 다냐고 말했지만 내 맘이다. 왜.
여튼, 다시 키버포 패브릭스.
내적 흥분 상태라 잘 몰랐는데 나의 이 경건하고 공손한 결제 모먼트를 율언니가 사진으로 남겨줬다.
원하는 걸 사고 나와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다 갖지 못해 아쉬웠다. 뭐가 그렇게 아쉬웠냐고 하면, 귀엽고 어여쁜 것들을 더 많이 갖지 못한 것 보다 그 공간이 내 것이 아닌 것? 커다란 통유리 창 가득 들어오는 햇빛과 그 아래 선명하게 드러나는 키버포만의 패턴, 단정하게 정렬된 멋진 오브제들. 널찍한 테이블과 재봉틀이 있는 kbp fabrics 그 자체를 갖고 싶다!!!
마음속에 엉뚱한 점 하나가 찍힌 기분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 엉뚱한 점 하나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행복한 상상을 만끽하고 싶다. 그 점이 엉뚱하게 남아있을지 지향점이 되어 나를 이끌지 두고 볼 일이니까.
아무튼 취향 심폐소생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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